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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2013)

by 고전영화관 2026. 1. 12.

개봉일 : 2013년 9월 11일

 

1. 처음부터 말을 믿지 않는 영화

<관상>을 보게 되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인물들의 대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인물들은 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중요한 판단은 말이 끝난 뒤에 내려진다. 시선이 잠시 멈추는 순간, 표정이 굳어 있는 시간, 고개를 돌리는 방향 같은 것들이 대화보다 먼저 보인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어떤 인물은 그 시선에 대한 설명을 하려 하지 않고 충분히 들여다본 뒤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은 빠르지 않다. 인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서로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말보다 시선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세계를 펼쳐가며 흘러간다.


2. 얼굴을 읽어내는 일이 늘 정확하지 않은 이유

이 작품에서 얼굴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주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궁금증에 대한 질문을 계속 만들어낸다. 같은 얼굴을 보면서도 인물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그 차이가 점점 커져간다. 누군가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지만 그 확신도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다. 얼굴을 보고 읽어내는 행위가 빨라지면 그 결과는 쉽게 흔들리게 된다. 영화는 이 불안정함을 감추지 않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 나간다. 그래서 인물들의 선택은 단호해 보이지만 그 선택에 대한 근거는 늘 완전하게 않게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어떤 해석도 정답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보았다는 사실과 이해했다는 느낌 사이의 간극이 계속 남아있고 그 간극을 흘러가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채워준다.


3. 특별한 능력이 혼자 남지 못하는 과정

<관상>은 개인의 재능을 강조하는 영화처럼 시작되지만 결말은 그 재능을 개인의 것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눈에 띄는 능력으로 인해 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누군가의 재능은 스스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사용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능력의 정확도가 아니라 어디에 쓰이느냐이다. 같은 능력이라도 위치가 달라지면 그에 따른 역할도 변화한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보다 그 사람이 어떠한 자리에 놓였을 때 생기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야기는 단순한 능력 있는 개인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고 능력이 계속 이동하며 그 이동 과정에서 의미가 달라진다.


4. 이 영화가 끝까지 정리하지 않은 것

<관상>은 끝까지 과정과 사건에 대해 정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옳고 그름을 나누지도 않고 누군가의 선택을 평가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내린 결정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사건에 대한 결과를 남긴다. 얼굴을 본다는 행위는 사건에 대한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그것이 모든 사건들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판단이 어긋나게 되고 그 어긋남은 다음 상황을 만들어간다. 이 작품은 그 연관성을 끊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가며 장면들을 채워나간다. 명확한 결론 대신 사람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얼마나 불완전한 시도인지 그대로 작품 속에 남겨두고 영화가 끝이 난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명확한 결론이 아닌 그 불완전한 시도에 대한 질문을 남긴 상태에 더 가깝게 된다.